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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p1.jpg미네소타와 
미네소타 한인커뮤니티

 

올해 미주 여러 지역에서 미주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성대히 열리고 있는 가운데 미네소타 한인 커뮤니티도 올해로 미네소타 한인 사회뿐만 아니라 전 미주 한인사회에 커다란 획을 긋는 새로운 한인 역사의 장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1953년 미네소타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이 역사적인 미네소타 한인회를 창립한 이래로 1978 9 5일 루디 퍼피치 미네소타 주지사는 10 3일을 미네소타 한인의 날로 선포한 바 있습니다. 미네소타 한인회 창립 50주년이라는 뜻 깊은 역사를 맞이하는 올해 팀 폴렌티 미네소타 주지사와 주정부는 물론 미네소타 연방 의원들도 미주 이민 100주년과 함께 미네소타 한인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하고 주정부에서는 이에 공식 선언문을 미네소타 한인회에 전달했습니다. 미네소타 한인들과 한인 커뮤니티는 이민 반세기의 역사를 넘어 새로운 반세기 역사를 또 시작하려 하고 있습니다.

 

미네소타는 한반도 땅덩어리를 합친 것과 비슷한 크기의 면적(21 8,600 제곱 km)이면서도 부산 광역시(2000년 현재 483)의 인구정도밖에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곳에 우리 한인들은 비공식적으로 1920년대부터 미네소타에이주하기 시작해 한국 전쟁 전후 공식 이민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12,500여명의 한인 1(1.5) 2(2000년 센서스), 13,000여명의 입양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또한 100,000 여명의 한국전 참전 군인과 그 가족들이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초대 이윤호 회장부터 현재 41대 한인회장 (김문규) 임기까지 지난 50년 동안 이곳 미네소타 한인 커뮤니티와 한인회는 80년대 이후 양적 팽창을 거듭하고 있는 한인 비즈니스 업계를 비롯, 한인 상공회의소, 한인봉사회, 한미여성회, 한인 입양인 선교회, 한국 대학원 학생회, 한국학교등 20개가 넘는 각급 한인 단체와 기관 및 12개의 교회, 성당, 사찰 등의 종교기관 등과 함께 이곳 25,000명이 넘는 한국 문화권 한인들과 입양인들을 명실상부하게 아우르는 거대한 조직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내 다른 한인지역과 다르게 대다수 초창기 한인회와 한인커뮤니티의 주요 그룹이었던 학생들과 지식인들의 배경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관계로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한 한인회 활동이 특색이기도 합니다. 

 

적은 인구에 광활한 면적을 갖고 있는 미네소타는 상업과 문화 교육적으로 중서부의 여타 지역과 뚜렷하게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오고 있는 가장 균형잡힌 도시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산업과 역사의 물줄기인 미시시피강이 이곳 이타스카라는 조그만 호수로부터 발원되며 미시시피강 양안에 자리한 미네아폴리스와 세인폴은 미네소타를 굴러가게 하는 중심 축과도 같은 역동의 두 도시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쇼핑 센터인 몰 오브 아메리카(Mall of America)세인폴 미네아폴리스 국제공항이 소재해 미네아폴리스는 미네소타의 물류 수송 중심지로서는 물론 인접 위스칸신과 아이오와주 등의 모든 상업과 교통을 아우르는 허브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50년 한국 전쟁 직후 당시로서는 유일하게 한국에 취항한 이래 50년 이상 한국국민과 교포 그리고 물류의 수송에 지대한 역할로 교민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노스웨스트 항공 (NWA) 본사가 이곳 미네아폴리스에 소재해 있어 한국과 미네소타의 인적 물적 교류에 지대한 역할을 해 오고 있습니다.

 

미네소타의 주도로서 쎄인 폴은 미네소타 주립대학의 쎄인폴 캠퍼스와 7개의 각급 대학교육 기관과 주요 관공서 등은 물론 르네상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와 문화적인 유적을 자랑하는 종교 기관 건물들이 산재해 있는 유서 깊은 도시로서도 유명합니다. 이러한 두 도시의 산업, 역사, 교육, 문화적인 배경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미네소타가 가장 살기 좋은 곳 중의 하나로 언제나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한국인들에게도 교육적인 잠재력이 가장 높은 곳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특히 미네소타는 경제적으로 무한한 잠재력을 바탕으로 컴퓨터와 전자부품, 철강 기계류, 운송 통신 장비, 광학 의료기기는 물론 푸드 산업 부문에서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 그 산업 역량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2002년 창사 백주년을 맞은 3M은 미네소타 경제의 대표주자로서 한국에서는 미국기업이 아니라 한국기업으로 인식될 정도로 현지화 전략에 성공한 기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2000년 현재 한국 현지의 3M 609명이나 되는 고급인력을 고용했으며 이곳 본사에서는 한때 60명이나 되는 한국인을 고용한 바 있는 이 회사는 통신, 사무용기기, 전기, 전자, 자동차 부품 등 2 5백여종의 제품을 생산, 1999년 현재 매출액이 260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미네소타에 본사를 두고 있는 소매상 (retail store) 타겟 (Target. Corp.)은 전국적으로 체인망을 확대 구축하면서 K-Mart를 고사하게 만들었고 월 마트를 추격하고 있습니다. 전자제품 판매상인 베스트 바이 (Best Buy Corp.)도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는 미네소타의 주력기업으로 그 성장세가 확산일로에 있습니다.

 

미네소타에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의료분야 입니다. 미국의 유수의 잡지와 신문에서 대서특필되고 있듯이 매년 진료 과목별 미국 최고 병원에 대한 리포트에서  항상 전체 순위에 미네소타 로체스터의 메이요 클리닉이 수위를 차지하고 있어 각 나라의 지도급 인사들의 주요 진료 검진 장소이기도 합니다. 미네소타의 이러한 의료 테크놀러지와 리서치 기술의 발전은 이곳 주력 분야의 하나인 의료기기 수출 산업에도 커다란 배후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케네디(J.F. Kennedy) 대통령이 메이요 클리닉을 이용해 자신의 지병을 어렸을 때(고등학교와 대학때 이후 계속해서)부터(30년대 후반) 치료해 왔다는 것은 돈많았던 케네디 가문의 미네소타 메이요 클리닉에 대한 신뢰와 명성을 증명하는 징표이기도 합니다.

 

2002년 현재 미국내 제조상품 수출 20개 주에 미네소타를 비롯한 이곳 중서부의 6개주(33%)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1인당 소득으로 따지면 미네소타는 중서부 13개주 중에서 제일 높으며 미 전체로는 열번째에 해당($31,913) 하는 소득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특히 2001년에 처음으로 한국이 미네소타의 10대 수출국으로 부상함으로써 지금까지 컴퓨터와 전자, 기계류, 푸드 산업의 주요 시장으로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네소타에 거주하는 미국 경제인들은 물론 한인들의 관심은 첨단 테크놀러지를 자랑하고 있는 한국시장으로 점점 더 쏠리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4번째로 많은 4 6천여명의 학생 규모를 갖고 있는 미네소타 주립대학이 이곳 미네아폴리스에 소재해 있어 교육 인프라 구축에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네소타와 한국 커뮤니티는 교육자원의 교류를 통해 오랫동안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 전까지도 미네소타의 조그만 커뮤니티로 존재해 왔던 미네소타 한인들이 한국전 직후부터 한인회 성장의 커다란 전기를 맞게 됩니다.

 

지난 1953년 전 미국 부통령이었던 휴버트 험프리는 전후 한국 복구 센터 (the Center for Reconstruction of Korea)로 미네소타 주립대학을 지정하게 됐고 전후 거의 폐허가 돼 버린 국립 서울대의 재건설과 교육 프로그램 복구를 위해 1954년부터 1962년까지 미네소타 주정부의 미네소타 주립대학과의 프로젝트 계약으로 서울대로부터의 2 29명의 교수진이 이곳 미네소타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이로써 한국과 미네소타의 첫 교육자원 및 인적교류의 첫 물꼬를 본격적으로 트게 됐고 이곳 한인커뮤니티가 이들 고급인력과 그 가족들의 한인 커뮤니티로의 대량유입을 겪으면서 질적 양적 성장을 가져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한국의 고급 두뇌인 서울대학 교수들의 이 프로젝트 참여는 미네소타 대학이 서울대의 재건에 기술적인 지원을 하게 됐고 한국에 미네소타 대학을 결정적으로 홍보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에 따라 60년대 이후 매년 30-40여명의 한국의 유수의 대학에서 우수한 인적 두뇌들이 꾸준히 이곳 주립대학 대학원에 진학해 수학함으로써 미네소타 한인사회의 동력을 형성하게 됐습니다.  

 

현재 4백여명의 대학원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매년 많은 수의 한국 대학원생들이 이곳 주립대학의 MBA와 로스쿨, 첨단 분야인 전자와 컴퓨터, 화공, 의료 등은 물론 정치, 경제, 저널리즘, 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있는 여건으로 볼 때 미네소타와 한국에서의 경제 교육자원과 인프라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확대될 것입니다. 이곳을 졸업한 3천명이 넘는 한국내 미네소타 주립대학 동문들은 또한 한국에서 정..학계는 물론 경제계에 포진해 있습니다.노태우 정부에서는 한때 한국 정부 각료의 3분의 1이 미네소타 주립대학 동문들로 채워지기도 했습니다.

 

미네소타는 지난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래로 가정 없이 자랄 수 밖에 없었던 한국 입양인들을 가장 따뜻하게 맞아 준 곳입니다. 미네소타에 가장 먼저 정착한 북구 유럽출신의 이민자들은 일찍부터 혹독한 기후와 악조건을 극복하고 정착한 사람들로서 동병상련의 정으로 한국에 버려진 고아들을 입양해 그들을 성장 교육시켜왔습니다. 따라서 미네소타는 어느 곳 보다도 많은 한국 입양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한국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는 곳입니다. 네살때인 1977년 미네소타의 바우만가에 입양돼 성장한 브라이언 바우만 (우리에게는 성덕 바우만으로 더 잘 알려진) 군의 1998년 한국으로부터 골수를 이식 받아 생명을 구한 스토리는 바우만가의 헌신적인 자식 사랑과 한국 국민들의 성덕 바우만을 통해 표출된 입양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함께 보여준 잊지 못할 감동의 기억이었습니다.  

 

이들 입양인들은 자주 모국을 찾아 한국의 문화 유산과 전통을 배우면서 한국과의 문화적 사회적인 유대감을 넓히며 한편으로는 이곳 주류사회에서 체득한 미국 문화를 한국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해 미네소타와 한국에 거주하는 모든 한인과 한인 커뮤니티에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이곳 미네소타의 한국 입양인들은 문화, 저널리즘, 스포츠 분야에 특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있습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이곳을 거쳐간 입양인들도 타주의 한인 커뮤니티의 많은 분야에서 이민 1세대와 2세대 보다 더 한국인으로서의 재능을 잘 발휘해 미국 주류사회에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약은 이곳 한인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있어서도 커다란 민족의 자존심을 불어넣는 활력이 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미네소타에서는 특히 한인 입양인들과 한인2세의 주요 언로가 되고 있는 매체인 영문 코리안 쿼털리(Korean Quarterly) 1997년부터 발행돼 창간 5주년을 맞아 미국 전역은 물론 유럽과 한국에서도 주목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매체가 주목받는 것도 이곳에 한인 입양인들의 고향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한 풍부한 인적 물적 자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 입니다.

 

이러한 언론 매체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이곳 미네소타 한인회와 한인커뮤니티에서도 5 23일 한글 신문인 코리안 미네소타를 창간해 이 지역 교민들의 종합소식은 물론 한인 2세와 한인 입양인등 자라나는 한인 차세대들을 대상으로 한국문화와 교육개발을 통해 한인커뮤니티의 정치와 사회 지도자들을 배출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 경제 정치 사회 분야의 거대한 인적자원으로서 잠재력을 갖고 있는 한인 입양인들과 그 가족들을 한인 커뮤니티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묶어 줄 수 있는 다양한 문화 교육 프로그램 개발은 이곳 한인회가 가장 관심을 두어야 할 목표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이들 입양인들과 한인 2세들은 현재 올드 타이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한인회와 각급 한인단체를 대체해 나갈 차세대 동량들임을 감안할 때 이들의 한인단체와 한인 커뮤니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제고와 활성화를 위해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과 인프라 구축은 창립 50주년을 맞는 한인회와 한인커뮤니티의 중차대한 소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This was written in 2003).

 

 

Insung Oh

 

Editor of Korean Minnesota Monthly (May 23, 2003~)

Publisher & Editor of Korean Press (August 2006~)

Secretary and Editor of Korean Immigration History (2007)

Executive Director of Korean Association of Minnesota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