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미네소타 한인 역사 산증인, 봉사, 희생, 책임정신 한인사회에 심어


"이민 100주년," "한인회 창립 50주년" 이윤호 한인회 초대 회장 인터뷰


2009_-_Yun_Ho_Lee_(Photo).jpg"저는 오래 회장을 했다는 것 뿐입니다. 별로 한일이 없어요. 정말로 모든 분들이 수고 안하신 분이 없습니다."


1954년부터 1964년까지 초대부터 계속해 10대까지 미네소타 한인회장을 역임하고 12대(1966년), 17대(1972년)에도 한인회장을 지내 미네소타 한인사회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이윤호씨.


그는 50년 미네소타 한인회 역사의 거의 4분의 1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0년 역사가 그냥 흘러오지 않았기에 생각에 잠기면서 내놓은 겸손의 발언은 짧지만 심려하다.


반세기를 흘러오면서 미네소타 한인회를 이끌어 온 한인회장은 초대부터 41대(공식 임기 2003년 12월)까지 무려 28명. 이들은 이윤호씨 외에 성주호, 김윤범, 전성균, 한문희 , 송창원, 김익진, 김태환, 서재만, 박명춘, 이상준, 허승회, 고영련, 이병윤, 김진만, 정철, 김기용, 김문규, 김장규, 노희상, 신재린, 김일근, 조원준, 이병렬, 김현덕, 김태형, 허원회, 변우진씨 등이다.


초대 이윤호 회장부터 현(2003년) 김문규 회장까지 28명의 한인 커뮤니티의 이들 리더들은 미네소타 한인회는 물론 코리안 어메리칸 50년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게 한 ‘엔진’들이었다.


올해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여 팀 폴렌티(Tim Pawlenty) 미네소타 주지사는 지난 6월 ‘한인 이민 100년 선언문’을 제정한 바 있다. 지난해부터 미국 여러주에서 ‘코리안 어메리칸 센테니얼(Korean American Centennial)’을 기념하는 행사는 많았지만 ‘한인 이민 100주년을 선언하는 공식 문서까지 공표한 주는 뉴욕, LA 등 대도시를 포함 몇 몇 주에서만 이루어져 왔다. 미네소타 한인 이민 역사가 예사롭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 선언문은 한인 커뮤니티의 미네소타에 대한 많은 공헌들을 적시하고 있다. 1만 2천 5백명의 한인 이민자(2000 Census)가 미네소타에 거주, 직업에 종사하고 있고 한국전 참전 군인들이 가장 많은 주 중의 하나인 미네소타인들의 한국전 참전을 기리는 ‘한국전 기념비(Korean War Memorial)’를 건립하는데 이곳 한인들이 기여했으며 1만 5천명이 넘는 한국 입양인들이 미네소타의 가장 생산적인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선언문은 2003년이 ‘한인 이민 100주년’과 ‘미네소타 한인회 창립 50주년’의 해라고 밝히고 미네소타 코리안 어메리칸의 역할이 한국의 역사와 가치, 번영, 미네소타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가져와 두 나라간의 힘과 활력을 유지하는 데 공헌했다고 적고 있다.  코리안 어메리칸 센테니얼 선언문의 직접적 배경이 된 구절들이다.


초기 이민선조들이 이룬 긍지의 한인 아이덴터티 계승해 가야

한인 문화적 정체성과 반비례하는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 바라

 

"한인 이민 100년의 역사를 회고할 때 맨 먼저 이땅을 밟은 하와이의 초기 이민자들이 우리 한인들의 긍지를 잃지 않고 꿋꿋이 지켜 왔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이민 선조들의 이런 긍지와 삶의 자세를 온전히 전수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미네소타 한인 이민자의 대선배인 이윤호씨는 인터뷰내내 한인들이 언어의 민족이고 문화를 보존하고 있다는 것은 타민족과 종족의 부러움의 대상이자 한인들의 ‘아이덴터티’를 확고히 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미국 사회에서 한인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반비례하는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에는 우리 모두가 더욱 더 노력해야 할 소명이라고 봅니다."


미네소타 한인 2세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이윤호씨. 우리보다 열등한 미네소타의 다른 소수 민족들도 자신들의 후세들을 통해 정치적 대표성을 구가해 오고 있으나 그렇지 못한 미네소타 한인들의 현실을 개탄한다. 한인들은 투표를 통해 집단적으로 단결하는 모습을 이곳 정치인들에게 보여주어야 하고 영어의 유창한 구사 등을 매개로 우수한 한인 후세대들이 나와 미네소타 국회에 많이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기대했다.


북한 원산이 고향인 이윤호씨는 해방직후(46년) 월남, 서울에서 살다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48년 12월 동경하던 유학을 위해 도미했다. 53년 노스다코타 제임스 타운 대학(Jamestown College)에서 회계학을 전공, 졸업한 뒤 55년 미네소타 대학에서 같은 회계학으로 석사학위를 마쳤다. 그 직후 식품회사(International Marking Food Company)와 곡물회사인 Cargill 등에서 3~4년을 근무한 뒤 자신의 봉제사업(Lee’s Apron Manufacturing Company)을 창업해 지난 97년 12월까지 약 30여년 동안 '수성'해 왔다.


"처음에는 저희 집 다락과 지하실에서 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의 전공이 회계학이어서 사업의 발전에 대한 청사진만은 뚜렷하고 확고했다. "결코 큰 사업을 일으킨 큰 사람(창업주)들은 처음에 큰 것부터 손대지 않아요." 자신의 기업 철학이자 실천 이념을 암시하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승부욕이 누구보다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윤호씨가 꿈꾸었던 '야망'은 무엇이었을까? 큰 사업을 일군 기업가로서의 '명성'이 그의 '심모원려(深謀遠慮)'한 목표였을 것이다. 큰 사람과 큰 사업에 액센트를 부여하는 그의 발언에서 쉽게 포착할 수 있는 그의 인생의 대의와 야망.


"1천~2천개의 스토어를 갖고 있는 대형 체인망을 하나만 개척(유통망을 확보)해도 비지니스는 쉽게 이루어져요." 자신의 사업이 한창 번성하던 때 그는 대형 체인망 개척으로 영일이 없던 때를 회고한다. 이때 그는 대형 체인망 K-Mart 등이 있던 뉴욕 등 대도시들은 매달 드나들다 시피했다.


이런 대형 체인망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의 거래선이 일단 한군데만 개척되면 두 세군데의 대도시 지역 오더 공급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렇게 해서 그가 일군 대량 공급 대형 체인망은 K-Mart를 비롯, Sears, Target, JC Penny, Woolworths-Woolco등이었다고 밝혔다.


70년대 한 전임회장은 초창기 이윤호씨의 봉제사업에 많은 유학생 부인들이 고용돼 학비를 벌어 남편 유학생들을 크게 도왔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부인도 만삭의 몸으로 출산 직전까지 일했다고 회고한다. 이윤호씨의 사업 현장이 유학생 가족들에게는 학업을 지탱해 주는 아르바이트 현장이기도했다. 초창기 자신의 다락과 지하실에서 재봉틀 4대로 출발한 소규모 사업이 전성기때는 미니애폴리스 다운타운에 있던 회사에 50여명의 노동자들을 고용한 굴지의 봉제회사로 탈바꿈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 97년 이 기업을 완전히 처분하기에 이른다. 이 해는 그가 공교롭게도 림프구 암 증상 진단을 받았던 해 이기도 하다. 인생의 정점에 서서 세상을 달관하고 조망하는 나이에 자신의 전성기를 되새기면서 다시 사업가의 야망으로 재충전 된듯이 스파크가 체감되는 이윤호씨. 그에게서 어디에서도 현실적인 ‘패배감’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적기의 암 발견과 몇 개월간의 강력한 약물 치료로 그는 건강을 되찾아 보람있는 나날을 보내 고 있었다. ‘적기’에 자신이 일선에 물러나게 되었다는 발언에서 ‘안도감’이 강하게 묻어 나왔다.


미네소타 한인 역사 50년에서 이윤호씨 일생의 ‘대의’는 무엇이었을까? 누구든지 자신의 가업을 일으키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닐 수 없다. 초대회장 이윤호씨도 자신의 학업과 직장 경험을 토대로 창업한 목적에 투철, 자신의 기업을 성공적으로 일구는 것이 인생의 주(主)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그의 일생에 종(從)의 자리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미네소타 한인 사회는 물론 미국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었다고 언급한다면 누(累)가될까?


그러나 한 개인의 긴 인생 역사에서 대의의 주종관계가 뒤바뀌어 오히려 자신의 일생이 더욱 더 환한 빛을 발할 때가 있다. 이윤호씨의 사례가 바로 이 경우에 해 당할 것이다.


자신의 기업을 일구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 나기까지 부의 확대와 화려한 명성은 설혹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비해 보잘 것 없다하더라도 자신이 기업활동을 통해 얻은 그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 자신이 학업을 불태웠던 대학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후세들을 위해 헌신적인 봉사와 경제적, 정신적 후원을 배푼 사례를 미네소타 한인사회는 이윤호씨에게서 가장 잘 기억하고 있다.


그가 최장수 미네소타 한인회장으로서 보여준 후배들에 대한 사랑과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 역시 반세기 미네소타 한인 역사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후 한국 사회 교육 인적 자원과 시설 복구 파급 효과 인식

사저 개방, 한인 유학생 든든한 울타리 역할로 리더십 발휘

 

전후 한국사회의 교육 인력과 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복구는 한국 사회의 재건의 명운과 직결되는 중요한 ‘화두’였다. 당시 서울대는 북한군과 미군에 의해 대량 파괴돼 모든 시설의 복구가 시급한 실정이었다.


이윤호 초대 한인회장이 회장 직책을 수행하기 시작하던 초창기인 55년 국립대학 서울대와 미네소타 주립대학과의 자매결연을 통한 인적 물적 그리고 학문적 교류는 '미 연방 경제복구 기금프로그램(a federal economic recovery grant program)'의 탄생을 매개로 54년부터 62년까지 229명의 서울대 교수와 조교등 교수 요원들이 대거 미네소타 대학으로 연수와 유학을 오게하는 ‘발원’이었다. 이는 미네소타 한인 커뮤니티 한인들의 양적 팽창을 가져 오는 직접적 동인이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 60년대 초 미네소타 의대 부학장으로 한국에 파견됐던 Neal Gault씨. 여든이 넘은 Gault씨는 '한국통'으로 미네소타 대학을 거쳐 갔던 미네소타와 한국의 숱한 의대 교수들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살아있는 한국 역사의 증언자이다. 그에 따르면 ‘미 연방 경제복구 기금  프로젝트’로 미네소타 대학 교수들이 교육, 연구, 의약, 간호, 공공 건강 분야의 조직, 행정과 기본 운영 시설의 개발과 강화에 대한 기술적 조원과 지원을 목적으로 한국에 파견됐다.


한국에서는 의료, 의약, 공공행정, 농업,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학자들이 미네소타 대학에 유학해 학위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국한 뒤  한국 사회의 복구와 학문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자신의 집을 개방, 이들 한국 유학생들과 접촉하고 교류하면서 ‘동병상련’을 나누었던 이윤호 초대회장. 누구보다 이윤호 전 회장은 한국의 장래와 발전에 밀접하게 접목돼 있었고 ‘분수령’이 될 이 전후 교육 프로젝트가 미네소타는 물론 한국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에 대해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네소타 대학을 졸업하고 성공적으로 미국 사회에 정착한 선배로서 후배들의 생활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헌신적으로 앞장섰다. 그의 집은 항상 열려 있었고 유학생들이 일상적인 대화는 물론 경제적 정신적 도움과 격려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24대 한인회장(1979년)을 지낸 허승회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당시 이윤호 회장의 집은 모든 유학생에게 열려 있어 이회장댁의 음식을 먹어 보지 않은 유학생이 없을 정도로 유학생들을 보살피고 학업을 격려했다”고 회고했다. “때때로 미혼 유학생들을 위해 ‘처녀 총각 파티’를 개회해 객지에서 보내는 외로움을 달래 주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이윤호 전회장은 한인 커뮤니티를 너머 미국 사회 속에서도 그는 후배 사랑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자신의 리더십과 헌신적인 공헌으로 1991년 그의 모교인 제임스타운 대학의 동창회로부터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공식 인정받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그는 자신이 은퇴할 때까지 20여년동안 30만달라나 되는 돈을 모교에 기부해 후학들의 장래에 밝은 미래를 개척해 주었다. 기업을 창업한 이후 미네소타 주립대학에도 계속해 기부함으로써 미네소타 대학 프레시던트 클럽(President Club)회원 자격을 갖고 있다. 


한인사회의 가장 성공적인 자립형 모델로 주정부의 예산 책정과 지원을 받아 내며 발전을 거듭, 한인 연장자들의 생활과 복지에 앞장서고 있는 ‘한인복지센터.’ 이 복지센터의 초대 이사장으로서 헌신적인 봉사와 공헌으로 지난 2002년 이 복지센터로부터 공로패를 받았다.  1988년에는 미네소타 아시아 태평양 커뮤니티에 대한 헌신적인 공헌을 인정받아 주정부 아시아 태평양 위원회로부터 아시아 태평양 지도자에 선정됐고 주지사 루디 퍼피치(Rudy Perpich)로부터 이 지도자 상을 수상했다.

 

한인들로 부터 "Civic Mind" 가진 솔선수범의 "Great Leader" 평가받아

성공한 미네소타 교육자 '자서전' 반복해 읽으며 인생 회고 여유가져

 

이윤호 초대 회장이 91년부터 한인 복지센터 초대 이사장으로 일할 때 사무총장이었던 그레이스 리(Grace Lee)씨는 최근 이윤호씨에 대해 주저없이 “Civic Mind”를 가진 “Great Leader”라고 평가했다. “초창기에는 예산이 없어 무료로 복지센터에서 일했다”고 회고하는 Grace Lee씨는 “이윤호씨가 초창기 한인 복지센터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솔선수범해 스스로 기부를 하기도 했고 직접 발로 뛰며 크고 작은 커뮤니티 모임에 언제나 나가 지인들을 설득, 기부하도록 독려했다”고 강조했다. “모든 한인들이 그 분의 말씀이라면 존경했어요”라며 Grace Lee씨는 이윤호 초대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한인 사회의 인식의 중요한 단면을 잘 표현했다.


창업한 자신의 사업을 정착시키기에도 부족한 시기인 50-60년대 한인회장으로서 한인회를 착근시켜 오늘 미네소타 한인회 50년 역사를 온전히 살아 있도록 한 이윤호씨. 같은 원산이 고향으로 고등학교때 만나 후일 인생의 반려자가 된 부인 이순자씨의 일생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윤호 초대 회장의 인생의 대의를 빛나게 하는 데 보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후학들의 고충을 듣고 느끼고 해결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됐던 두 분의 집을 개방하고 관리하는 일은 누구의 몫이겠는가?


인터뷰내내 기억이 가 닿지 않는 구체적 사실들을 이윤호씨를 대신해 일일이 확인해 주는 이순자씨. ‘바늘과 실’ 관계라는 것은 이를 두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두 분의 슬하에 자식은 없지만 이곳을 거쳐간 많은 후학들이 ‘입지’를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에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얻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두분의 희생정신과 봉사정신, 책임정신은 아직까지 귀감이 되고 있다.  “이윤호 초대회장 내외분의 헌신적인 봉사정신은 우리 한인 사회의 귀감이 되었고 역대 한인회장 대부분이 그 전통을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60년대 한인회장(14대 1969년)을 지낸 전성균 미네소타 주립대 의과대학 이비인후과 교수는 이곳에 정착한 사업가 이윤호 초대 회장을 중심으로 한인회가 뿌리를 내리게 됐고 이를 중심으로 한인 교회들이 생겨나게 된 배경이 됐다”고 밝혔다.


60년대 말과 70년대 초는 미네소타 한인 사회에서 특히 ‘교회’를 중심으로 한인들의 커뮤니티 활동이 더욱 뻗어 나가던 시기이다. 이윤호 초대 회장은 미네소타 한인 교회들의 모태인 ‘Korean Christian Fellowship’을 창립한 주요 구성원 중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 이후 여기에서 다양한 형태의 한인교회들이 분파되어 가는 계기가 됐다.


전교수는 “미네소타 한인회가 타지역과 달리 모범적이고 순수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강조한다. 유학생 중심이었던 초창기 한인 커뮤니티의 뿌리와 배경이 계속돼 현재까지 회장직을 둘러싸고 전혀 이해 관계가 개입되지 않고 친목과 투철한 봉사정신이 미네소타 한인회 리더십의 덕목으로 이어져 온다는 것은 미네소타 한인회만의 자랑이기도 하다.


현재 이윤호씨는 미네소타 한인 장로교회에서 장로직을 수행하는 것 이외에 부인과 골프를 치는 것을 생활의 유일한 낙으로 삼고 있다.


인터뷰를 약속하고 찾아 갔던 지난 달 이윤호 회장은 서울대 총장을 역임하고 문교, 보사, 환경 장관을 역임했던 권이혁씨(56년 미네소타 보건대학원 석사)와 서울대와 고려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이호왕 박사(59년 의과대학 미생물학 박사)의 ‘자서전’을 읽고 있다고 소개했다.


자신의 인생의 정점에서 과거를 돌아 보면서 이제 미네소타 대학을 거쳐갔던 많은 이들의 흔적 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을까?


8년간의 연구 끝에 1976년 세계 최초로 유행성 출혈열의 병원체 ‘한탄바이러스’와 예방 백신을 한꺼번에 발견한 이호왕 박사의 ‘바이러스와 반세기’라는 최근 발행된 자서전을 두번씩이나 읽었다고 강조하는 이윤호씨.

이 책의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내가 1970년부터 1994년까지 25년간 유행성 출혈열의 병원체를 발견하고 예방백신을 만들기까지 성공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연구 과정에서도 성공한 이야기보다 많은 공간을 실패한 이야기로 메꾸었고…”


이윤호 초대회장도 자신의 창업과 기업 수성의 과정에서 경험했던 성공담과 실패담을 되돌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윤호씨의 ‘대의’는 한인 사회를 이끌어 오늘에 이르게 한 공로로 빛을 발하고 있다.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한인으로서의 긍지를 자랑스럽게 회고하고 있는 이윤호씨에게서 미네소타 후세대들은 그의 희생, 봉사, 책임정신의 리더십을 계승할 것이다. (Insung Oh, Editor of “Korean Minnesota Monthly” November-December Issue, 2003)